노네임워십
▲1등과 성공이 아닌, 오직 은혜만을 찬양하는 노네임워십.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많이 오해하는 부분이 바로 돈에 대해서입니다. 하나님이 돈을 싫어하고 성공도 미워하며 1등도 증오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돈과 성공, 그리고 1등의 삶이 우상이 되어버린 현대 그리스도인의 삶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싫어하거나 증오하지 않으십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항상 돈을 멀리하여 가난하게만 살아야 하고, 성공을 멀리하여 실패해야 하며, 1등을 멀리하여 꼴찌를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최선을 다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오류에 대하여, 성경은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돈과 성공과 1등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우상이 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필요를 넘어 욕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사는 일을 멀리하고 돈과 성공, 1등만을 위한 삶을 살아갑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보다 자신의 욕심을 위한 삶을 살게 되면, 그것이 바로 우상이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목마름과 우선순위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돈을 벌어도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사용하고, 성공을 해도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며, 1등을 해도 겸손히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시편 92편은 안식일에 부르는 찬송 시입니다. 내용은 하나님이 악인을 멸하시고 의인을 인도하시는 정의로운 통치를 찬양합니다. 겉으로는 권선징악의 내용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앞서 나눈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생활을 어떻게 통치하느냐의 문제로 보아야 합니다.

시편은 구약 시대에 기록되었는데, 당시는 전쟁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백성들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곧 돈을 벌고 성공하고 1등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쟁의 시대가 아닙니다. 비즈니스를 통한 경제활동, 사업과 직업을 통한 성공, 실적과 시험을 통한 1등의 삶은 우리가 피하지 못한 현실의 생활입니다.

우리가 이 현실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영광의 삶에 대한 개념은 돈과 성공과 1등이라는 개념 안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돈을 많이 벌든지 조금 벌든지, 성공을 하든지, 실패를 하든지, 1등을 하든지, 꼴찌를 하든지, 어떤 경우든지 주어진 삶에서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노네임워십
▲1등과 성공이 아닌, 오직 은혜만을 찬양하는 노네임워십.
시인은 이런 하나님의 통치를 찬양하면서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노래합니다.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1-3절)”.

여기서의 성실이 바로 의인을 성실히 인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성실하실까요?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인도하신 구약의 통치를 말합니다. 지금 시대는 우리가 어떤 삶의 상황에 놓이더라도 영광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통치를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나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돈을 많이 벌었다고 교만하여 돈을 우상으로 삼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며 이웃을 도와야 합니다.

성공했다고 교만하지 말고 날마다 예배해야 합니다. 1등 했다고 교만하지 말고,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을 끌어주고 밀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시인처럼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 속에 살기를 원할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결코 고난 속에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가 고난에 대해 오해하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벧전 4:13)는 말씀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고난은 우리의 현실에서 만나는 가난하고 실패하고 꼴찌를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만나는 고난은 대부분 이 세상이 죄로 인해 죄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고난이거나, 내가 죄를 지어 고통을 당하는 고난입니다. 이런 고난은 하나님이 원치 않지만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고난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고난은 복음을 전할 때 당하는 고난입니다. 교회를 섬길 때 생기는 고난입니다. 신앙을 지키려다 당하는 고난입니다. 이런 고난은 현실에서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성공해도, 1등을 해도 찾아옵니다.

어느 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 살게 하신 것은 그들을 감금하고 고문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평안과 안식을 주시려고 하셨습니다.”

노네임워십
▲1등과 성공이 아닌, 오직 은혜만을 찬양하는 노네임워십.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고난을 당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평안과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통치로 우리 믿는 자가 누리는 평안과 안식을 종려나무의 번성과 백향목의 성장으로 비유합니다.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12-13절)”.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이런 성실하신 통치를 믿어야 합니다. 당장 누군가 부자가 되었다고, 성공했다고, 1등 했다고 정죄하지 마십시오. 그가 그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사는지가 중요합니다.

반대로 누군가 가난하고 실패하고 꼴찌를 했다고 정죄하지 마십시오. 역시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사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습니다. 단순히 돈과 성공과 1등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판단하지 말고, 그 상황 안에서의 영광을 위한 삶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십시오. 지금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시편의 소망
시편의 위로
▲시편의 위로 백성훈 | CLC | 280쪽 | 13,000원
백성훈 목사(김포 이름없는교회)
<시편의 위로>, <시편의 소망>, <팀사역의 원리> 저자